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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진묵대사와 성모암

 

 

     오색 단풍의 가을이 가기전에 불자의 도를 갖은 사람은

       한번은 다녀와야 한다는  김제의 성모암에 다녀왔습니다.

 

 

 

 

      성모암(聖母庵)의 유래  :

 

         조선 명종 임술년(任戌年, 서기 1562)에 태어나신 진묵대사께서는

        '() 동방(東邦)() 석가모니라 이르시다' 장하신 도덕 진세에

         높으신 성인이시다.

         탄생하신 곳은 불거촌(전북 김제시 만경면 화포리)으로 대사의 어머니 묘소가

         이곳 유양산에 있으며 '무자손 천년향화지지(無子孫 千年香火之地)

         이곳은 진묵대사의 소점지라 일컬어 우리나라 민속제전처(民俗祭典處)

         칭송하여 내려오는 곳이라 한다.

 

 

  

 

 

 진묵대사의 모친 묘소

 

        무자손천년향화지지(無子孫 千年 香火之地)

            진묵대사는 그가 출가하면 대를 이을 손이 끊기어, 그의 어머니 묘에

            성묘할 사람이 없을 것을 예견하여 풍수설에서 말하는

            무자손 천년향화지지(無子孫 千年香火之地 = 자손이 없어도 제사를 지내줄

            사람이 천년 동안 이어지는 명당 유양산)  안장 하였다.

 

            이 무덤에 고사를 드리면 병이 낫고 부자가 된다고 하여

            400 여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잘 보존 되어 내려오고 있으며 , 

            오늘날에도 많은 참배객이 줄을 잇는다.

 

 

 

 

 

 

 

 성모암 대웅전  삼존불

 

        진묵대사(震默大師)  조선 중기의 고승(高僧) : 1562 - 1633(명종 17-인조 11).

        전라도 萬頃懸 佛居村 출신으로 ,태어난 뒤 3년 동안 초목이 말라 시들었고,

        비린내가 나는 음식과 마늘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성품이 지혜롭고 자비로워서

        사람들이 "불거촌에 부처님 났다." 고 하였다고 전한다.

 

        7세에 출가하여 전주 봉서사(鳳棲寺)에서 불경을 읽었는데,

        한 번 읽으면 곧 암송하고 내용을 통달 하였으므로 따로 스승을 두지 않았다.

        봉서사 주지는 어린 진묵에게 조석으로 신중단에 소향예배(燒香禮拜)하는

        소임을 맡겼다.

 

        어느날 신중들이 그 주지 승에게 현몽하여 이르기를 우리 소신들이

        어찌 감히 불()의 예를 받겠는가 ,  원컨대, 다시는 아침 저녁으로

        소향하게 하지 말라고 하였다 한다.

 

 

 

 

        어머님 돌아가신 후 제문에

           "태중 열 달의 은혜 어찌 갚사오며 슬하 3년동안 길러주신

            은혜 잊을 수 없도다만, 만세위에 만세를 더 사신 다해도 자식의 마음

            여한이온데 백년도 다하지 못하고 떠나가신 어머님 명은

            그 어찌 짧으신가요."   라고 하셨다.

 

  

 

 

고시래전

 

 

      고시래의 유례 :

        진묵대사는 불거촌에 어머니의 묘소를 정하고 후손이 없으므로

        지속적 관리를 위해 진언으로 제사지내는 방편을 삼아 들에 나가 음식을 먹을 때

        '고시래' 라하여 제사를 대신하였다 한다.

        고시래의 '고시'는 제주 고씨인 성모님의 고씨(高氏)에서, 래는 예도예()

        써서 고시래라하여 간편하게 신행할 수 있게 한 것에서 유례 된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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